- 이게 마지막 기회? 46년 활동 마감하는 '하겐 콰르텟'의 고별 무대, 놓치지 마세요!
올 11월, 국내 클래식 음악계가 세계적인 현악사중주단의 내한 공연과 국내 정상급 팀들의 무대로 뜨겁게 달아오를 예정이다. 특히 현악사중주 악단들의 '우상'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 하겐 콰르텟이 9년 만에 한국을 찾아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실내악의 자존심을 지키는 아벨 콰르텟과 아레테 콰르텟 역시 가을밤을 수놓을 풍성한 연주를 예고하며,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11월은 현악사중주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가장 주목받는 공연은 단연 하겐 콰르텟의 무대다. 11월 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이번 공연은 이들의 한국 마지막 방문이 될 것으로 알려져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1981년 오스트리아 하겐 가문의 네 형제로 시작된 이 악단은 1987년 라이너 슈미트가 합류하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음악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과의 전속 계약을 통해 수많은 명반을 발표했으며, 올해와 내년 시즌에도 유럽과 미국 등 전 세계를 돌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는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작품인 16번을 비롯해 안톤 베베른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5개의 악장'과 '6개의 바가텔', 그리고 슈베르트의 명작 '죽음과 소녀'를 연주하며 깊이 있는 음악 세계를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 은퇴를 앞둔 이들의 마지막 한국 무대가 될 이번 공연은 팬들에게는 아쉬움과 함께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한국 실내악의 저력을 보여주는 아벨 콰르텟도 11월 2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전국연주 3'이라는 타이틀로 관객들을 만난다. 활동 13년 차를 맞은 아벨 콰르텟은 올해부터 내년 2월까지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이번 공연은 그 일환이다. 지난해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로 호평을 받았던 이들은 이번 베토벤 시리즈를 통해 현악사중주의 정수를 선보일 계획이다. 공연 레퍼토리로는 베토벤 현악사중주 3번 라장조, 9번 다장조 '라주모프스키 3번', 그리고 15번 가단조 등을 선정해 베토벤 음악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게 탐구할 예정이다.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한국 실내악의 미래를 이끌고 있는 아레테 콰르텟도 11월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특별한 무대를 꾸민다. 결성 7년 차인 이들은 지난 8월 캐나다 밴프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 최초로 본선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21년 프라하의 봄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던 경험을 살려, 이번 공연에서는 체코 작곡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야나체크의 현악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와 2번 '비밀편지', 그리고 수크의 '옛 체코 성가 벤체슬라브에 의한 명상' 등을 연주하며 체코 음악 특유의 서정성과 강렬함을 동시에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11월은 이처럼 국내외 최고 현악사중주단들의 향연으로 클래식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 대구 추석, 지루할 틈 없는 '문화 놀이터' 개장!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민족 대명절 추석 연휴, 대구가 시민과 방문객을 위한 특별한 문화 예술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판타지아대구페스타 가을축제'와 함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변모하며, 전시, 공연,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가족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기회를 선사할 예정이다.먼저, 시각 예술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전시들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세계적인 국제사진전시회 '2025 대구사진비엔날레'가 'The Pulse of Life–생명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성황리에 개최 중이다. 30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700여 점의 사진 작품은 시공을 초월한 예술적 영감을 선사하며, 추석 당일(10월 3일)을 제외하고 연휴 내내 문을 연다.대구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 1세대 거장 이강소 화백의 깊이 있는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 '곡수지유(曲水之遊)'가 열려 지역 문화의 뿌리를 되짚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대구간송미술관의 특별 기획전 '삼청도도(三淸滔滔)–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굳건한 예술혼을 상징하는 고전 회화의 정수를 선보이며 전국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도심 곳곳에서는 흥겨운 공연의 향연이 펼쳐진다. 신천 수변무대에서는 '토요시민콘서트'가, 코오롱 야외음악당에서는 '2025 대구예술제'가 가을밤을 아름다운 선율로 수놓는다. 동성로 거리에서는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청년버스킹'이 시민과 관광객에게 활력을 선사한다. 특히, 대명공연거리를 중심으로 열리는 '2025 대구국제힐링공연예술제'는 다양한 장르의 연극 공연을 선보이며 '공연문화도시 대구'의 명성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대구근대역사관과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연 만들기, 노리개 만들기, 전통놀이 등 명절의 정취를 더하는 전통문화 체험이 마련되어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한다. 국립대구과학관은 과학과 예술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이월드는 교통 이용객을 위한 입장권 할인 및 가족 특가 이벤트를 진행해 방문객의 발길을 이끈다.이 외에도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스탬프투어' 앱을 활용한 대구 주요 관광지 인증 이벤트를 통해 추첨으로 푸짐한 경품을 증정하며, 스포츠 팬들을 위한 프로농구 경기도 대구체육관에서 다음 달 4일 펼쳐진다.방문객 편의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대구시는 추석 당일을 제외한 연휴 기간 내내 시티투어 버스를 정상 운행하며, 대구공항, 동대구역, 동성로, 이월드에 위치한 4곳의 관광안내소 역시 평소와 다름없이 운영된다.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이번 추석이 '판타지아대구페스타 가을축제'와 시너지를 이루며 더욱 풍성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예술과 문화를 통해 행복을 만끽하는 명절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이 통로를 아시나요? 100년 만에 '최초 개방'되는 서울역 연결통로
옛 서울역사가 준공 100주년을 맞아 현대 미술의 옷을 입고 시민들을 맞이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문화역서울284와 서울역 일대에서 특별기획전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 건축물인 옛 서울역의 유구한 역사를 재조명하고, 김수자, 신미경, 이수경 등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1925년 '경성역'으로 처음 문을 연 후 100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 온 이 공간은 이제 예술과 역사가 공존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며 관람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전시는 옛 서울역이 걸어온 100년의 시간을 깊이 있게 돌아보고, 1925년 준공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된 공간을 현대적인 시선으로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관람객들은 옛 서울역이 간직한 역사적 의미를 담은 희귀한 사진 자료들과 함께, 김수자 작가의 설치미술, 신미경 작가의 조각, 이수경 작가의 도자 파편을 활용한 작업 등 각 작가들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들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공간이 지닌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탐색하며, 옛 서울역이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삶과 꿈이 교차했던 상징적인 장소임을 일깨운다. 전시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기회를 제공하며, 예술적 영감과 역사적 통찰을 동시에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특히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동안 일반에 개방되지 않았던 옛 서울역과 신 서울역사 간의 연결통로가 최초로 공개된다는 점이다. 서울역을 이용하는 수많은 승객들은 이제 이 연결통로를 통해 역사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문화역서울284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단순한 통로 개방을 넘어, 과거와 현재의 서울역이 물리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시간의 단절을 허물고 공간적 연속성을 부여하는 의미를 갖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시 기간 동안 이 연결통로의 이용 현황을 면밀히 분석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2026년부터는 구-신 서울역사 간 연결통로의 상시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로써 옛 서울역은 더욱 많은 시민에게 열린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1947년 '서울역'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 '경성역'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2004년 신 서울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대한민국 교통과 물류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통해 희망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하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순간들을 함께했다. 이번 '백년과 하루' 특별전은 이러한 옛 서울역의 깊은 역사적 맥락을 현대 예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상상력으로 확장하는 의미 있는 시도다. 100년이라는 시간을 기념하는 동시에, 미래 100년을 향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이번 전시는 시민들에게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깊은 사유와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 30년 역사 미술관이 '해체'된 이유? K-아트씬 뒤흔든 아르헨티나 작가의 '파격 선언'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아트선재센터, 지난 30년간 미술의 향연으로 관객을 맞이했던 그 익숙한 공간이 지금은 마치 인류 멸망 이후의 폐허처럼 변모했다. 미술관의 주 출입구는 거대한 흙더미로 가로막혀 관객의 발길을 돌리게 하고, 한때 전시장을 환히 밝히던 조명들은 꺼진 지 오래다. 미술품 보존을 위해 24시간 상시 가동되던 온습도 제어장치마저 침묵하며, 공간은 퀴퀴한 냄새와 습한 공기로 가득하다. '화이트 큐브'의 상징이었던 흰 가벽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드러난 것은 건물의 낡은 콘크리트 벽과 앙상한 철골 구조물이다. 벽에 새겨져 있던 전시 서문의 글자들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맞은 듯 도무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워지거나 해체되어, 과거의 흔적만을 희미하게 남기고 있다. 강당의 좌석들 역시 먼지 쌓인 비닐에 덮여, 한때 이곳을 채웠던 활기 넘치던 관객들의 모습은 상상조차 어렵다.이처럼 아무런 인기척 없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은 아르헨티나 출신 세계적인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가 아트선재센터를 무대 삼아 인류 멸망 이후의 모습을 시각화한 대규모 설치 전시다. 인간이 자취를 감춘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는 인류 출현 이전의 원시적 지구를 연상시키는 흙과 식물들이 야생적으로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 언젠가 인간이 사용하다 버린 듯한 기괴한 형태의 기계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설치 작업을 통해 비야르 로하스는 인류가 왜 멸망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비야르 로하스의 한국 첫 개인전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내년 2월 1일까지 이어진다.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의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전시장뿐만 아니라 복도, 계단, 화장실, 극장 등 모든 공간을 활용하여 펼쳐진다. 특히 1995년 미술관 옛터에서 처음 열린 전시 '싹'의 3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만큼, 미술관의 역사적 의미와 작가의 미래 지향적인 메시지가 교차하며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작가는 미술관 건물을 물리적으로 '해체'하고, 인류가 직면한 기후 위기, 기술 발전의 양면성 등 다양한 위기를 상징하는 수많은 조각들을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처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이를 통해 인위적인 건축 공간과 지구 생태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가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비야르 로하스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직면한 현재와 미래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생명체와 그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를 탐구해왔다. 전시 제목인 '적군의 언어'에 대해 작가는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는 상징체계를 홀로 발명한 존재가 아니다. 약 2만 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인류와 함께 진화했고, 그들과의 만남은 적대적이면서도 친밀하고, 경쟁적이면서도 협력적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 과정에서 오간 것은 단순한 도구나 몸짓, 불만이 아니라 상징적 사고와 의미 창조의 첫 불씨였다. 전시 제목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인 관계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적'이라는 완전한 타자성은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한 거울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절대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독립적인 존재로서는 의미를 만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야르 로하스가 생각하는 오늘날 인류의 '적'은 바로 포스트휴먼 시대를 이끌 인공지능(AI)이다. 그는 "우리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가진 새로운 타자, AI와 이미 마주하고 있으며, 그들과 공존하며 지식을 전송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동시에, 어쩌면 그러한 행위가 우리 스스로 소멸을 준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예감 또한 피할 수 없다"는 경고를 던진다.관객은 폐쇄된 미술관 정면 출입구 대신 우회 경로를 통해 전시장 1층과 2층에 들어서면 비야르 로하스가 2022년부터 이어온 '상상의 종말(The End of Imagination)' 연작을 마주하게 된다. 이 작업은 작가가 직접 개발한 '타임 엔진(Time Engine)'을 기반으로 한 시리즈로, 타임 엔진은 비디오 게임 엔진과 AI, 가상세계를 결합한 일종의 디지털 시뮬레이션 도구다. 비야르 로하스는 이 도구를 활용하여 변화하는 생명체와 건축, 생태계, 사회·정치적 조건이 뒤섞인 가상의 세계를 디지털 공간에 구축한다. 그리고 이 가상공간에서 생성된 조각들을 모델로 삼아 현실세계에 이를 물리적 형태로 정교하게 구현해낸다. 이 조각들은 인간과 기계의 노동을 상징하는 금속과 콘크리트, 플라스틱, 흙, 유리, 수지, 소금, 나무껍질, 자동차 부품 등 유기적·무기적 재료가 층층이 쌓인 복합체로서, 물질의 근원적 의미와 생명의 순환을 탐구한다.비야르 로하스는 타임 엔진을 통한 작업 방식에 대해 "지구가 새와 나무, 바위, 기계를 만들어내듯, 타임 엔진으로 구축한 디지털 생태계 역시 자율적으로 물질을 생성한다. 이는 창작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존재론을 전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즉, 인간이 세계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스스로 작용하여 현실을 만들고, 그 현실이 다시 물질을 창조해낸다는 것이다. 그는 "나는 그렇게 생성된 물질들을 우리가 공유하는 현실로 옮겨온다. 즉, 나는 세계를 모델링하고, 그 세계는 나를 위해 조각을 모델링하는 것"이라며, 창작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흙더미 위에 놓인 '상상의 종말 Ⅳ'(2024)는 드럼세탁기를 천장에서 내려온 해괴한 괴물 기계가 집어삼키고 있는 듯한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SF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나뭇가지와 로봇 팔 등 유기물과 무기물이 뒤엉킨 형태로 완성되어, 인간의 일상(세탁기)이 자연(나무)과 기계(로봇) 모두에 잠식당하고 해체되는 미래를 암시한다. 2층에 전시된 '상상의 종말 III'(2022)는 776×448×522㎝의 압도적인 크기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뿌리까지 드러낸 거대한 나무가 천장에서부터 뻗어져 내려오고, 여러 재료가 뒤섞여 만들어진 복합체는 마치 인간인 관객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감을 선사한다. 이처럼 '상상의 종말' 시리즈는 상상하는 존재인 우리 자신의 종말 위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이번 전시는 비야르 로하스가 리얼 DMZ 프로젝트(2014~), 제5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16), 광주비엔날레(2018·2021)에 이어 한국에서 진행한 장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전시를 위해 작가 스튜디오의 멤버 11명이 6주간 미술관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하고 연출하는 등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은 "이번 전시는 붕괴와 진화, 재생의 순환 속에 놓인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며, "이곳에서 촉발된 미지의 감각과 사유를 통해 우리가 현실로 받아들이는 세계의 구조를 낯선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태생의 비야르 로하스는 집단적이고 협업적인 과정을 통해 대규모의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로, 조각, 드로잉, 영상, 문학, 행위를 넘나들며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이미 멸종한 인류의 조건을 탐색하는 한편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다종 존재 간의 경계를 추적해왔다. 그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2022), 미국 마이애미 배스 미술관(2022), 로스앤젤레스(LA) 현대미술관(2017),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2017),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2017) 등이 있다.
- 영국 대표 '스웨이드' vs 미국 전설 '스매싱펌킨스'…부산에서 맞붙는 록의 자존심
대한민국 록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 26일, 부산 사상구 삼락생태공원에서 화려한 막을 올리고 3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올해는 영국, 미국, 프랑스 등 해외 6개국 17개 팀과 국내 64개 팀을 포함, 총 81개 팀이 참여해 역대급 라인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개막 전부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축제의 포문을 여는 첫날에는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밴드 스웨이드가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다. 여기에 독보적인 감성의 록사운드를 자랑하는 넬, 데뷔 28년 차에 빛나는 국민 밴드 자우림을 비롯해 씨앤블루,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등 세대를 아우르는 아티스트들이 총출동해 가을밤을 뜨겁게 달군다. 둘째 날의 열기는 더욱 거세진다.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살아있는 전설, 스매싱 펌킨스가 헤드라이너로 부산을 찾는다. 또한 '팝의 왕자' 미카의 첫 출연 소식과 함께 일본의 록밴드 와니마,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단편선과 순간들, 1980년대를 풍미한 싱어송라이터 윤수일밴드까지 합세해 장르와 국경을 초월한 무대를 선보인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날에는 헤비메탈의 제왕 메탈리카가 등장해 모든 록 팬들의 심장을 폭발시킬 준비를 마쳤다.이번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단순히 화려한 라인업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와 상생하고 차세대 아티스트를 발굴하는 등 내실을 다지는 데에도 힘썼다. 축제 전 서울, 부산, 전주, 심지어 대만 타이베이까지 총 5회에 걸쳐 '로드 투 부락' 행사를 진행하며 축제의 열기를 전국, 나아가 아시아로 확산시켰다. 또한, 차세대 아티스트 육성 프로그램인 '스쿨오부락'과 신진 아티스트 경연 프로그램 '루키즈 온 더 부락'을 통해 미래의 한국 록 음악계를 이끌어갈 새로운 얼굴들을 발굴하는 장을 마련했다. 지역과의 상생 노력도 돋보인다. 사상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양해를 구하는 한편, 지역 주민에게 푸드코트 부스 운영 및 안내요원 채용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 상인회가 아티스트 라운지 운영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축제의 성공이 곧 지역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온라인 예매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현장 판매분도 마련되었으며, 3일권 24만 2천원, 2일권 17만 6천원, 1일권 11만원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 57년간 나무만 깎아온 '천하제일' 장인, 그가 마침내 공개한 '나무 속 비밀'의 정체
15세의 소년이 처음 조각도를 잡았던 그 순간부터 무려 5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가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오직 나무에 부처의 형상을 새기는 일에만 몰두해 온 장인이 있다. 마침내 "천하제일의 목조각장"이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얻은 국가무형문화재 허길량 장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혼과 땀이 응축된 네 번째 개인전이 오는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며, 평생을 바쳐 나무와 나눠온 깊은 교감의 결과물들을 대중 앞에 선보인다.이번 전시의 주제는 ‘박달다듬이목과 소나무에서 깨어난 비천(飛天)’이다. 단단하기로 이름난 박달나무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품은 소나무, 그 오랜 세월의 결을 품은 나무에 장인의 손길이 닿아 비로소 생명을 얻은 천상의 존재, 비천상 20여 점이 전시의 중심을 이룬다. 마치 고대 사찰의 벽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 유려한 곡선과 생동감 넘치는 표정을 지닌 비천상들은 관람객을 단숨에 신화의 세계로 이끈다. 여기에 미륵반가사유상, 보살상, 삼신불 등 총 30여 점에 이르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장인의 57년 수행과도 같았던 작업 역사를 웅변한다.허길량 장인의 작업은 단순한 공예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은사였던 서수연, 이인호 우일 스님의 가르침 아래, 나무를 깎는 기술 이전에 불교의 깊은 세계관을 먼저 체득했다. "불상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처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모든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오대산 중대보궁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이름난 사찰에 그의 손에서 탄생한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조각칼 끝에서 나무는 더 이상 무생물이 아닌, 불성을 향한 염원과 깨달음의 메시지를 품은 살아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념비적인 작품이 최초로 공개되어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부처가 최초로 불상을 조성할 때 사용했다는 전설 속의 나무, '전단향목'으로 조각한 높이 60cm의 관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바로 그것이다. 은은한 향과 고귀한 결을 자랑하는 이 불상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전시 공간을 압도하는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법신·보신·화신이라는 불교의 심오한 세계를 조형적으로 풀어낸 미륵반가사유상과 장엄한 보살상들은 장인이 평생에 걸쳐 추구해 온 조형미와 정신세계의 정수를 남김없이 보여준다.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허길량 장인이 일평생 쌓아온 부처님 조각의 기량이 집약된 전시"라며 "많은 이들에게 부처님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나눌 귀한 인연이 될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장인 스스로도 "이번 전시가 관람객에게 불교미술의 참뜻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이번 전시는 한 거장의 예술 세계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 속에서 묵묵히 전통을 지키고 미래를 성찰하게 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루브르, 바티칸 비켜! 국립중앙박물관, '케데헌' 덕분에 세계 3위 박물관 된다?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흥행이 한국 문화유산의 보고인 국립박물관에 전례 없는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케데헌’ 열풍에 힘입어 국립박물관의 지난 8월 굿즈 판매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무려 2.5배 폭증했으며, 관람객 수 역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며 연말까지 세계 3대 박물관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K-컬처의 글로벌 파급력이 전통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경제적 파급 효과까지 창출하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교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24일, 국립박물관의 굿즈 판매 실적을 공개하며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김 위원에 따르면, 올해 8월 국립박물관의 굿즈 매출액은 52억 7천6백만 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8월 매출액인 21억 4천2백만 원과 비교해 약 2.5배의 경이로운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케데헌’을 비롯한 K-컬처 콘텐츠가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한국적인 소재를 활용한 기념품들이 '품절 대란'을 빚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음을 방증한다. 김 위원장은 "K-컬처 열풍 속 한국을 소재로 한 콘텐츠에 전 세계가 주목하며 국립박물관 굿즈의 품절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며, 급증하는 관람객 수요에 맞춰 "국립중앙박물관 650만 관람객 시대를 대비해 기념품샵 확대, 어린이박물관 신축 등 관람환경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실제로 지난 6월 개봉한 ‘케데헌’의 전 세계적인 흥행은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5년 8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총 관람객 수는 432만 8,979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무려 77.5% 증가한 수치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연말까지 약 650만 명의 관람객이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수치는 단순한 기록 경신을 넘어선다. 김 위원장은 "연간 관람객 650만 명을 달성하면 파리 루브르박물관, 바티칸박물관에 이어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 3위를 기록하는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문화기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024년 기준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파리 루브르박물관(874만 명), 2위는 바티칸박물관(683만 명), 3위는 런던 대영박물관(648만 명) 순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면, 이는 한국 문화유산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이는 쾌거가 될 것이다.김교흥 위원장은 이번 성과가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 전통문화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성공사례를 뷰티, 푸드, 엔터 산업에도 확산시켜 K-컬처 300조 시대(약 2,200억 달러)를 앞당기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K-컬처가 단순한 문화 현상을 넘어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케데헌’으로 시작된 K-컬처의 파급력이 국립박물관이라는 전통 문화기관의 문턱을 낮추고, 전 세계인에게 한국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알리는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K-콘텐츠의 성공이 어떻게 전통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 "이걸 공짜로?"…추석 당일, 국립국악원이 작정하고 여는 잔치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 연휴를 맞아, 잊혀가는 우리 가락의 멋과 흥을 되새기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국악과 판소리 공연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전통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무대부터 외국인과 함께하는 이색적인 공연, 그리고 한 소리꾼의 예술적 집념이 담긴 완창 무대까지,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우리 소리가 관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먼저 국립국악원은 추석 당일인 다음 달 6일, 야외 연희마당에서 절기공연 '휘영청 둥근 달'을 열고 전통 놀이와 음악, 춤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무대를 선보인다. 이 공연의 백미는 사단법인 향두계놀이 보존회가 재현하는 '향두계놀이'다. 이는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없는 평안도 지역 농촌의 노동요를 엮은 것으로, 씨앗을 고르고 모를 심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까지의 전 과정을 무대 위에 생생하게 펼쳐내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국립국악원 측은 이북 지역 특유의 힘 있고 역동적인 소리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이자, 풍요를 기원하는 추석의 의미와도 깊이 맞닿아 있는 특별한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줄타기 신동'으로 불리는 남창동과 그의 아버지인 어릿광대 남해웅 부자가 펼치는 흥겨운 줄타기 공연이 명절의 흥을 돋우고, 공연의 마지막에는 관객과 출연진이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도는 강강술래와 신명 나는 판굿, 장구춤이 이어지며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국악의 세계적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무대도 준비된다. 사단법인 세계판소리협회는 다음 달 8일과 9일, 남산골한옥마을과 서울남산국악당 일대에서 '제3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축제 첫날부터 세계판소리합창단이 흥보가의 가장 신나는 대목인 '박타령'을 3성부 합창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들려주고, 세계가야금병창단은 12현과 25현 가야금을 넘나들며 춘향가와 창작곡을 연주해 우리 소리의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둘째 날에는 더욱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되는데, 프랑스, 카메룬, 영국 출신의 외국인 소리꾼들이 우리말로 춘향가의 '어사상봉' 대목을 창극 형식으로 선보이며 언어와 국경을 넘어선 판소리의 울림을 증명한다.그런가 하면 한 소리꾼의 예술혼과 집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무대도 관객을 기다린다. 다음 달 11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젊은 명창 지선화가 약 5시간에 걸쳐 심청가 완창에 도전한다. 열 살에 소리를 시작해 2018년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차세대 명창으로 우뚝 선 그는, 이번 무대에서 동초 김연수 명창이 정립한 동초제 심청가를 선보인다. 이는 짜임새 있는 사설과 극적인 구성이 특징으로, 5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직 소리꾼의 목과 고수의 북장단만으로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가는 판소리 미학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선화 명창은 "소리꾼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 서게 되어 영광이지만, 그만큼의 긴장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 이재명 대통령도 '극찬'...2000명 관객이 자리를 뜨지 못한 영화의 정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을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수많은 스타 감독과 쟁쟁한 작품들의 경연 속에서 예상치 못한 한 편의 영화가 축제의 중심을 뒤흔들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국내 대표 예술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기념하여 야심 차게 내놓은 프로젝트 영화, '극장의 시간들'이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상영작을 넘어, 2025년 부산의 가을을 가장 뜨겁게 달군 하나의 문화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그 시작은 개막 나흘째인 19일, 롯데시네마 센텀시티에서 열린 첫 상영회였다. 약 200석의 좌석은 예매가 열리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났고, 영화가 끝난 뒤 이어진 감독과 배우들과의 대화(GV) 시간에도 관객들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스크린 위로 펼쳐진 이야기뿐만 아니라, "극장은 기억과 감정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영화의 묵직한 메시지가 관객 한 명 한 명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각자의 추억 속에 자리한 '나만의 극장'을 소환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특별한 경험이었다.분위기는 20일 열린 두 번째 공식 상영에서 절정에 달했다.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를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손님이 등장한 것이다. 바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 영화를 관람했다. 대통령 부부의 등장은 그 자체로 엄청난 화제였지만, 더욱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가 끝난 뒤에 펼쳐졌다. 두 사람은 자리를 뜨지 않고 무대에 올라 감독, 배우, 그리고 일반 관객들과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했다. 현직 대통령이 영화제에 참석해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행보로, 이는 단순히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을 넘어 예술영화와 그것을 지켜온 공간에 대한 정부의 깊은 애정과 지지를 상징하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1일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무대인사에는 약 2,000여 명의 관객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감독과 배우들이 무대에 오르자 박수와 환호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극장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문화와 기억을 품는 장소'라는 프로젝트의 핵심 메시지는 축제를 찾은 모든 이들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 울림을 증폭시켰다. 결국 '극장의 시간들'은 상업적 흥행작이나 거장의 신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지난 25년간 상업성보다는 작품의 가치를 우선하며 묵묵히 예술영화의 보루 역할을 해온 씨네큐브의 철학이 관객의 기억과 감독의 의지, 그리고 국가적 관심과 맞닿아 2025년 가을, 가장 강렬하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 밤이 되면 '이곳'이 거대한 캔버스로 변한다…알고 보니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가을의 절정 속에서 역대급 규모의 축제 준비를 마치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수원시는 오는 9월 27일부터 10월 4일까지 8일간, '제62회 수원화성문화제'를 필두로 한 3대 가을 축제를 수원화성 일원에서 대대적으로 펼친다고 밝혔다. 올해는 '새빛팔달'이라는 주제 아래, 기존 3일이었던 축제 기간을 8일로 대폭 늘리고, 공간 역시 화성행궁에 국한되지 않고 수원화성 전역으로 확대하여 그야말로 도시 전체를 거대한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이는 단순히 규모만 키운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글로벌 프로그램과 시민 참여형 콘텐츠를 대거 확충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축제로 도약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이번 축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한층 더 장엄하고 품격있게 돌아온 대규모 프로그램들이다. 조선시대 왕의 뱃놀이를 모티브로 한 수상 퍼포먼스 '선유몽'과 실제 야간 군사훈련을 방불케 하는 '야조'는 수원화성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또한,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열었던 회갑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몰입형 예술 퍼포먼스 '진찬'은 마치 관람객이 230년 전의 역사적 순간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생생한 감동을 안겨줄 예정이다. 여기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초대형 종이 구조물을 완성하는 '시민의 위대한 건축, 팔달' 퍼포먼스는 축제의 의미를 더하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의 가치를 실현한다.축제의 백미는 단연 9월 28일 펼쳐지는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이다. 무려 1000명의 행렬단과 70필의 말이 동원되는 이 거대한 행렬은 노송지대를 출발해 장안문을 거쳐 행궁광장까지 이어지며, 1795년 을묘원행의 웅장했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행렬 도중 장안문에서는 경기도무용단과 무예24기 시범단의 박진감 넘치는 공연이 펼쳐져 볼거리를 더하고, 행궁광장에서는 능행차의 도착을 알리는 화려한 입궁 퍼포먼스가 대장정의 마무리를 장식한다.밤이 되면 수원화성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9월 27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리는 '2025 수원화성미디어아트'는 '만천명월 정조의 꿈, 빛이 되다'라는 주제 아래, 화서문과 장안문 등 수원화성의 성벽을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펼친다. 성벽 위로 그려지는 정조의 꿈과 수원의 미래는 전통과 현대 기술의 조화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예술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이 밖에도 시민들이 직접 가마를 메고 달리는 '가마 레이스', 과거시험을 체험하는 '별시날' 등 다채로운 시민 참여 프로그램과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글로벌빌리지'까지 운영되어, 명실상부 모두가 즐기고 참여하는 글로벌 축제의 면모를 갖추었다.